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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투써보고서] 권한과 권위를 착각하지 말자감투써보고서 2018. 3. 25. 12:54
2013년 1학기 동아리 활동보고서 평가
내가 동아리연합회(약칭 동연) 활동을 시작했을 때, 동연은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 같았다. 우선 인지도가 미약했다. 동아리 활동을 하더라도 존재를 모르는 이들이 많았고, 동아리 회장이 되어서야 알게 되는 곳이었다.
전체 동아리 대표자 회의(약칭 전동대회)와 활동 보고서 때문이었다. 그래서 동아리 회장들에게 동연은 자신을 귀찮게 하는 곳에 가까웠다. 자꾸 회의 오라하고 보고서 제출하라고 하니까.
게다가 영향력도 미약했다. 중앙운영위원회(약칭 중운위)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일례로 2012년 2월 중운위를 갔다 온 선배가 총학생회가 동연에게 지급할 단위 지원금으로 50만원을 책정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50만원은 그 당시 중앙동아리에게 지급되는 지원금 금액이랑 동일했다. (동아리연합회은 70여개의 중앙동아리를 대표하는 곳이다.) 선배는 간신히 싸워서 120만원 정도로 올렸다고 진이 다 빠진 표정으로 얘기했었다.
* 중앙운영위원회(약칭 중운위) : 총학생회장, 부총학생회장, 단과대 학생회장, 연합회 회장 등 단위 대표자들이 매주 한 번씩 모여서 교내 사안들을 논의하는 자리다.
선거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 많았다
1. 빈집털이로 부학생회장이 되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2012년 3월 보궐선거로 동아리연합회 부회장이 되었다. 내향적인 성격에 아싸 기질 다분했던 내가 학생회 임원이 될 수 있었던 건, 이런 동연 상황 덕분이지 않았을까.
내가 동연 부회장, 회장을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교훈은 ‘권한과 권위는 다르다.’ 였다. 부회장, 회장으로 당선되었다고 끝이 아니라, 내가 대변하는 이들이 날 그렇게 인정해줘야 진짜 부회장, 회장이 된다는 걸 배웠다.
매 학기 2~3번 정도 전체 동아리 대표자 회의를 했었다. 그 때 마다 70여명의 동아리 회장들은 무관심한, 더러는 귀찮음이 다분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임기 초반, 쉽게 통과되었던 안건은 거의 없었다.
전동대회 끝나면 파김치가 되었는데, 그 모습을 집행부원들이 안쓰럽게 쳐다보곤 했다. 또한 몇몇 동아리의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동연 무시해도 된다.’고 얘기했었고, 자기 동아리 방으로 불러 양 옆에 고학번 선배들을 끼곤 나를 압박하던 동아리 회장도 있었다.
그 때 체하는 줄 알았다
2. 신뢰를 얻고나서야 회장이 되었다.
동연 부회장, 회장으로 활동했던 3년은 동아리연합회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증명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신뢰가 쌓이면서 동연을 긍정적으로 봐주는 동아리 회장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지막 회장 임기에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설득하고 진행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동아리LT, 동아리 지원금 지급체계 개편, 동아리 등록 절차 개편, 회칙 개정 등의 변화들은 그 해 완성되었다.
2014년에는 이렇게 따로 만든 게 없어서 2013년 자료를 대신 올린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선거가 끝나고 학생지원팀에서 당선된 학생회 임원진들과 회식을 했었다. 서로 한 해 동안 잘 해보자는 의미였는데, 그 때 총학생회장이 살짝 취한 얼굴로 학생지원팀 팀장님에게 얘기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말은 '서강이 나를 뽑았다.' 였다. 그 때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싶었다. 매번 33.3% 투표율 간신히 넘기는 학생회 선거에서 과반의 표를 받았다는 게 학생 전체의 신뢰를 얻었다는 뜻이 아니지 않은가.
* 학생지원팀 : 학생회를 하면 가장 많이 교류하는 학교 부서이다. 교내 장학금과 교외 장학금도 다루지만, 학생활동과 언론사를 다룬다. 여담으로 학생회하다가 학생지원팀 학생활동 담당 교직원과 호형호제하는 경우도 있다.
그 때 내 표정이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
선거 당선이 내게 주는 건 권한일 뿐이다. 권위는 내가 세우는 게 아니라 남이 세워주는 것이다. 권위는 타인의 신뢰를 얻음으로써 획득한 영향력이다. 선거에 당선되었다고 해서, 남들이 ‘회장님’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내가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권한을 만들어내는 회칙,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내가 임기 동안 회칙에 나오는 벌점과 경고를 거의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권위가 없으면 '니가 뭔데'하는 반응부터 나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했을까. 나는 동아리 활동 평가에서 가산점을 주는 방향으로 동아리 회장들을 독려했다. 회칙에 나온대로 전동대회 몇 번 불참해서 벌점을 매긴다는 건 권위가 없는 상황에서 갈등만 키울 뿐이다. (솔직히 말해서 학생회 회칙 자체가 엄밀하지 않다.)
* 동아리 활동 평가 : 1년에 한 번 씩 동아리들이 제출한 활동보고서를 바탕으로 평가를 진행한다. 이 평가 결과에 따라 승급과 강등, 동아리 지원금이 결정된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적혀있는 것과 내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달랐다. 내가 해야 할 것은 권한을 행사하는 일이 아닌 신뢰를 얻는 일이었다.
이것이 내가 감투를 쓰고 가장 뼈저리게 얻은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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