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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투써보고서] 축제 전날, 섭외한 연예인이 펑크를 낸다면?감투써보고서 2019. 1. 20. 03:25
섭외 성공했을 때만 해도 좋았다
축제 전날에 섭외한 연예인이 펑크를 낸다면 어떨까?
2013년 서강 문화제를 준비하던 당시 SG워너비 김진호가 불후의 명곡에서 대학 공연은 돈을 받지 않는다고 말해서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그걸 보고 어떻게 매니저와 연락이 닿아 섭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전날 일정 확인 차 매니저와 연락을 했을 때, 매니저가 일정을 축제 다음 날로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눈앞이 깜깜했다. 어떻게든 와줄 수 없냐고 사정을 했지만, 매니저는 이미 다른 일정이 잡혀서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안 온다고 하면 실망한 사람들이 축제를 보러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냥 모른 척 있다가 당일 무대에서 공지하고 사과를 할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팀원들 의견도 들어보고 하면서 새벽까지 고민하다 사과문을 썼던 기억이 있다.
학생회를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게 된다. 내가 겪어보기도 했고, 주변 학생회가 이를 대처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느낀 바가 있었는데, 이를 공유하고자 한다.
일 터지면 정신줄 잡기 쉽지 않다
1. 원칙이 있어야 한다.
우선 일이 터졌을 때, 내부적으로 방향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때 학생회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내부적으로 공유하는 내용이 있다면 대응 방향을 잡기가 수월해진다. 일이 터졌을 때 그걸 잡으려고 하면 이미 늦었고, 시간적 압박 때문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2013년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시국선언이 서울대 총학생회를 시작으로 여러 대학에 퍼져가고 있었다. 당시 서강대 총학생회는 6월 중순이 되어서야 입장을 발표했는데, 메시지도 모호하고, 문장도 명료하지 못하며, 오타까지 있어서 많은 비판을 받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총학에 일임하고 크게 관여하지 않았던 것이 중운위원으로서 부끄럽고 죄송한 일이었다.
철학이 없는 학생회는 위기에 취약하다. 회칙에 장황하게 쓰여 있는 그럴듯한 말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공감하고 공유하는 살아있는 표현으로서 학생회의 존재의의를 세워야 한다.
학생회장은 뒤에 숨어서는 안된다
2. 학생회장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원칙에 따라 학생회의 입장이 정리되었으면, 무조건 학생회장이 본인의 이름을 걸고 의견을 표명해야 한다. 그 정도로 책임 관계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무게감이 실리지 않고, 그렇게 해야 학생회장 본인도 말을 조심해서 사용하게 된다. 이 일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으며, 절대로 다른 사람을 화살받이로 내세우면 안 된다.
2016년 동아리연합회가 소통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았다. 가장 큰 원인은 동연 회장이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회장이 글이나 댓글을 쓰거나, 집행부원이 학내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적은 있지만, 학생회장이 동연의 입장을 표명했던 적은 적어도 내 기억에는 없다. 나는 그런 태도가 학생들의 혼란을 가중하고, 동연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렸다고 본다.
인도판 나무를 심은 사람, 자디브 파잉 (자세한 내용 이미지 클릭)
3. 진정성과 일관성이 중요하다.
학생회장이 전면에 나서서 메시지를 전달할 때, 내용상으로 중요한 것은 진정성과 일관성이다. 이 두 가지가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은 학생회가 신뢰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는 곳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특히 진정성은 사과해야 할 때, 일관성은 어떤 권한을 집행할 때 중요하다. 진정성은 문제에 대한 깊은 공감에서 나오고, 일관성은 이전 항목에서 언급한 학생회의 존재 의의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나온다.
그 때 그렇게 연예인 섭외가 취소되고 사과문을 올릴 때, 나는 욕을 먹게 될거라 생각했다. 막상 사과문을 올렸을 때, 아쉬워하는 소리는 있었지만, 욕을 듣지는 않았다. 임기 동안 축제를 잘해보려고 애쓴 노력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겨서 그런 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이런 일을 겪으면 멘탈이 가루가 된다
학생회를 하다 보면 문제 될 부분이 없다고 생각해서 진행한 일이 학생들의 반대에 부딪히거나, 학생회가 부당한 일을 받게 되어 이에 대응해야 하거나, 아니면 사회적 이슈가 터져서 이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대체로 내부에서는 당황스러움에 우왕좌왕하는 와중에 외부에서는 빠른 입장 표명을 원한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회장은 패닉이 되기 쉽다. 내 경우에는 서두에 소개한 사례 말고도 동연 부회장이 되자마자 총학생회와 대동제 보이콧으로 대립했던 적이 있고, 중앙운영위원회 위원으로서 이명박 정부 때 시국선언과 박근혜 정부 때 세월호 사고를 겪었다.
여러 일을 겪었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무탈하게 임기를 마친 편이다. 내가 학생회를 하던 때에는 페이스북 그룹 말고는 제대로 된 커뮤니티가 없어서 어떤 일이 공론화되기가 지금보다는 어려웠고, 정치적 입장 표명은 총학이 할 일이지 동연이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내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 조금 어불성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힘든 일을 겪은 학생회장은 이런 글을 남길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학생회장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생각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댓글로 추가적인 의견을 달아주세요. 현재 학생회를 하는 이들에게 보다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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