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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투써보고서] 알콜쓰레기가 기획했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캠페인감투써보고서 2018. 12. 31. 01:25
누군가는 대학생활의 꽃이라고 하겠지만..
학생회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는 2014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하 OR)에서 음주 문화 개선 캠페인을 진행한 것이다. ‘선배님, 저는 하이트제로로 주세요.’ 라는 캠페인이었는데, 술은 못하는 신입생들이 OR 술자리에서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캠페인이었다.
이 캠페인은 술을 못하는 내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대학에 합격하고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서 처음 술을 마셨다. 그 때 선배들이 주는 족족 받아 마시다가 (물론 그 때도 주량이 약해보였는지 선배들이 조심해서 권했었다.) 뻗어서 택시에 실려 집에 갔었다. 그 일 때문에 OR을 앞두고 술 때문에 걱정도 많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그 때의 경험에서 나와 비슷한 후배들이 걱정하지 않고 오리엔테이션을 온전히 즐길 수 있기를 바라며 캠페인을 기획했었고, 나름 유의미한 결과들이 있었다. 그 진행 과정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당시 썼던 제안서 중 일부
1. 무알콜맥주를 누가 마셔?
사실 처음부터 이런 의도를 갖고 캠페인을 기획한 것은 아니었다. 매년 OR에서 동아리 소개책자를 나눠주었는데, 소개책자를 버리지 말라는 의미에서 음료나 사탕 같은 것들을 협찬 받아서 함께 줬었다. 이를 위해 2014년에도 협찬 제안서를 여러 기업에 보냈었다.
그 상황에서 하이트진로음료에서 메일 답신이 왔다. 요청했던 음료는 협찬이 불가능하지만, 하이트제로는 협찬이 가능한데 받을 의향이 있냐는 메일이었다. 그 때 하이트제로를 처음 들어보았고, 찾아보니 무알콜맥주였다. 처음 든 생각은 바로 ‘무알콜맥주를 누가 마셔?’ 였다.
2. 무알콜맥주의 재발견
협찬 제안서를 수십 곳에 뿌려서 한 두 곳에게 답장을 받는 상황이었기에, 저 제안을 그대로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알콜맥주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인터넷을 뒤졌다. 그러다 발견한 것은 임산부들이 술이 마시고 싶을 때 무알콜맥주를 마신다는 것이었다.
거기서 실마리를 발견했다. 술을 마시고 싶지만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알콜맥주가 의미가 있다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는 누구에게 의미가 있을까? 바로 술을 못 마시는, 소위 알콜 쓰레기인 신입생들이었다.
당시 만들었던 제안서 중 일부
3. 알쓰 신입생이 두려워하는 것
술을 못 마시는 신입생이 OR 술자리를 걱정하는 이유가 단순히 술을 못 마시기 때문일까? 강권하는 분위기가 아님에도 걱정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보통 술게임이 진행되는 OR 술자리에서 술을 못 마신다고 밝혀서 분위기를 깨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배들이 “뭐 마실래?”라고 물어보면 “선배님, 저는 하이트제로로 주세요”라고 답할 수 있도록 캠페인을 진행해보자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를 다시 하이트진로음료에 역제안을 했고, 하이트제로 1,000캔을 협찬받을 수 있었다.
“선배님, 저는 하이트제로로 주세요”라는 캠페인은 사전에 총학생회와 단과대 학생회의 협조를 얻어 진행되었다. OR에 참가하는 2~3학년들에게 캠페인에 대한 내용을 단과대 학생회를 통해 전달하고, 신입생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홍보했다.
캠페인 홍보를 시작하자 ‘내가 신입생 때 이런 캠페인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반응들이 있었고, 신입생으로부터 ‘술을 못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이런 캠페인을 준비해줘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내 기획이 실질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
OR 이후에 들은 피드백 중에는 행사 진행을 위해 술을 마실 수 없는 학생회 임원진들도 마셨다는 얘기도 있었고, 이후 단과대 MT를 진행할 때 무알콜 맥주를 함께 준비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외부효과들이 신기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당시 타 대학 동아리연합회 회장들과 교류하고 있어서, 이 캠페인을 여러 학교와 함께 진행하고자 했었다. 하지만 대학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방식이나 학생회 간의 권력관계가 달라 시행하지 못했다. 또한 캠페인 결과를 하이트진로음료 담당자분에게 충분히 공유했어야 했는데, 그 부분을 소홀히 했던 것이 아쉽다.
이 캠페인은 학생회가 늘 하던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내가 문제를 규정하고 이를 해결하려고 했던 시도이기도 했고, 또 술을 못하는 사람으로서 약간의 한풀이도 되었던 것 같아 기억에 남는다. 이 글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음주 문화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다소간에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댓글로 추가적인 의견을 달아주세요. 현재 학생회를 하는 이들에게 보다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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