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투써보고서

[감투써보고서] 학생회를 할수록 학생들과 멀어지는 이유

라쿤P 2018. 12. 31. 02:10


이상하게도 어떤 것에 주인이 너무 많으면 주인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대신 주인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 같다. 우리는 소외된 이들을 대변하겠다며 표를 받아 당선된 국회의원이 권력자가 되거나 공무원이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권력처럼 활용하는 경우를 왕왕 보지 않던가.

 

비록 만명 남짓한 대학사회이지만, 학생들이 학생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비슷하지 않을까? 학생회가 학생들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이들이 권력을 남용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학교 커뮤니티에서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학생회장이 되어보니 이 문제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학생들에게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일쑤였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일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학생회를 할수록 학생들과 멀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내 나름의 답을 찾았는데, 이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각자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시길 부탁한다.


 

1. 학생회 안에서의 권력 관계에 집중하게 된다


학생회장이 되면 나의 일상의 많은 부분이 학생회 활동으로 채워지게 된다. 자주 만나고 교류하는 이들이 학생회 사람들로 바뀌고, 이름보다 ‘-’, ‘회장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릴 일이 더 많아진다. 이게 생각보다 나의 시야를 좁히고, 어떤 권위의식 같은 걸 만들어낸다.

 

* 각 학생회장이 모이는 중앙운영위원회에서는 서로를 줄여서 부른다. 예를 들어 경영대 학생회장은 경짱, 공대 학생회장은 공짱, 동아리연합회 회장은 동짱 이런 식이다.


학생회를 하다 보면 전체 학생회 안에서 어떤 지위나 영향력을 차지하는 것에 집중하기가 쉽다. 목적을 위한 권력이 아니라 권력을 위한 권력이 되면 점점 일반 학생들과 멀어지게 될 뿐이다. 이 때문에 학생회를 그들만의 리그라고 부르는 것은 아닐까.



 

2. 판단 근거를 학생회 사람들의 생각에 둔다


학생회장을 하면서 어떤 걸 판단하게 될 때, 같이 회의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그 반응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학생회 하는 사람들을 전체 학생의 표본으로 잡는 것인데, 여기서 왜곡이 발생하기가 쉽다.

 

보통 학과 생활을 열심히 하는, 소위 아싸보다는 인싸가 학생회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단과대, 연합회마다 특유의 분위기나 우선순위가 있고, 이게 전체 학생들의 생각과는 다른 경우가 있다. 학생회 내부에서는 문제없다고 생각하여 진행한 사업이 일반 학생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가 이 때문에 발생한다.


 

3. 권력을 가지면 공감능력이 떨어진다


한 임상 실험에서 사람들에게 상대방이 볼 수 있도록 알파벳 E를 자기 이마에 쓰게 했다. 그랬더니 권력자일수록 자기 입장에서 E가 보이도록 썼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많은 연구들이 권력자가 되면 뇌손상이 발생하여 타인을 이해하는 공감능력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권력은 무언가를 인지할 때, 주변적이고 사소한 정보들을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판단에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개별적 특성을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지면서 점점 더 자신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에 의존하게 된다. 이로 인해 잘못된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부학생회장 1, 학생회장 2년 동안 느꼈던 것은 어떻게 보면 이 자리가 굉장히 작은 권력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취한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들을 보며 괘씸하다는 생각을 하는 내 모습이 무섭게 느껴졌다그래서 학생회장은 의식적으로 노력하든, 제도적으로 보완하든 최대한 학생회 바깥의 학생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한 번은 우리 지금 만나라는 이름으로 부회장과 같이 동아리 회장들을 일대일로 다 만나보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둘이 합쳐서 열명 남짓 만났던 게 다였다. 거기에 더해 동아리LT를 추진해서 동아리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한 자리를 만들기도 했었다. 이전보다는 좋은 결과가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LT를 자주 갈 수는 없었다.


기세 좋게 시작했지만..

 

돌이켜보니 대화를 나누기 위해 어떤 행사를 만드는 것도 물론 의미가 있었지만, 비공식적이고 사소한 만남을 많이 가졌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그들의 진심을 듣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혹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댓글로 추가적인 의견을 달아주세요. 현재 학생회를 하는 이들에게 보다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