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투써보고서] 내 대학생활 절반은 학생회였다
2013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댄스 동아리 'SHOCK' 공연 사진
내게 학생회에 대한 첫 기억은 2011년 2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동아리 공연이었다. 춤 동아리 공연 중에 몇몇 단과대 선배들이 해당 단과대 신입생들 전체를 인솔하여 우르르 나갔다. 다른 단과대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와중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사회자가 나와 남아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끝까지 자리를 지켜줘서 감사하다고. 나중에 알고보니 앞에 행사들이 딜레이돼서 동아리 공연이 늦게 시작했고, 12시가 넘어가자 방에서 시간을 보내야된다며 신입생을 도중에 뺀 것이었다.
그땐 몰랐다. 과 생활 적응 못하고 도피하듯 들어간 동아리에서 그 때 사회보던 선배를 만나게 될 줄은. 그리고 내가 그 선배 때문에 학생회를 3년 반 동안 할 줄은.
그 때 그 부탁을 거절해야 했다
1. 3년 반 학생회 활동의 시작
알고보니 그 선배가 동아리연합회 회장이었다. 2학기에 일손이 부족하니 도와달라는 선배의 부탁으로 나는 학생회 활동을 시작했다. 그다음 해에 엉겁결에 동연 부회장이 되었고, '이제 진짜 끝'이라는 말을 달고 살며 회장으로 2년을 더 활동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집행부 반년, 부회장 1년, 회장 2년, 그러니까 총 3년 반을 동아리연합회에 몸담았다.
입학할 때만 해도 내 인생 계획에 학생회는 결단코 없었다. 그건 과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인싸들의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학생회를 빼고 내 대학생활을 설명할 수가 없다.
* 동아리연합회(약칭 동연) : 서강대학교 70여개의 중앙동아리들을 대표하는 학생회이다. 동아리연합회 회장은 총학생회장, 부총학생회장, 단과대 학생회장, 연합회 회장 등으로 구성된 중앙운영위원회의 위원으로 소속되어 있다.
동아리연합회는 이런 일을 한다 (2013년 기준)
2. 내게 버거웠던 학생회장 감투
3년간 부회장, 회장 감투를 쓰고 있는 동안 나는 그 감투가 내내 부담스러웠다. 매순간 누군가를 대표해서 발언하고 결정해야 했다. 거의 항상 카톡 알람이 수백개씩 쌓여있었는데, 최종적으로 답을 하고 결정을 하는 건 나였다.
게다가 다들 그랬겠지만, 제대로 된 인수인계를 받지 못해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이 스트레스를 속시원히 털어놓고 조언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2014년 겨울, 나는 드디어 퇴임했다. 막상 여유가 생기자 내가 겪었던 어려움이 생각이 나면서, 동연이 없어질 경우를 대비해 업무 매뉴얼을 만들고 싶어졌다. 그래서 만든 것이 서강동연 업무 매뉴얼과 축제 기획 팁이다.
* 2000년대 초에 동연이 없었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 만들어진 동연은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들었다. 내가 활동하던 때에도 매번 선거에 나올 사람이 없었다. 내가 임기를 연장한 것도 그 이유가 컸다.
3. 나는 왜 이 글을 쓰는가
이후 내 할 일은 다 끝냈다는 마음과 후임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학생회는 관심 끊고 살았다. 그러다 2016년 말에 학교 커뮤니티에서 동연 임원진에 대한 비판과 비난하는 글들이 올라온 걸 봤다. 심지어 국정농단 사태에 비유한 글까지 있었다.
2017년 초 동연은 욕을 하도 먹어서 선거에 나올 사람도 없어보였다. 그런데 후보가 나왔다. 나는 그저 망하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 해 동연 회장이 불명예스럽게 사퇴하는 걸 보고 헛헛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나는 학생회장이라는 자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학생회 감투를 3년 동안 쓰면서 느낀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그 생각의 끝이 바로 이 글, '감투써보고서'이다.
발암이라니...
‘감투써보고서’를 통해 내가 했던 방식이 옳다고 주장하기보다는, 내가 했던 시행착오들을 솔직하게 고백하려 한다. 그래서 지금 학생회를 하고 있는 이들이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 나은 변화를 만들어내는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학생회장이라는 감투의 무게를 감내하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와 응원을 건네고 싶고, 그 감투를 쓰려고 하는 이들에게 참고할 자료가 되었으면 좋겠다.
3년 반... 어떻게 했나 모르겠다.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로 시작되는 꼰대짓이 될까 봐 겁이 난다. 그렇게 느껴진다면 가차없이 피드백 남겨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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